김요석 목사님 간증에 나오는 얘기 하나.

어느날 자기교회 집사님 한분이 찾아왔다.
새끼밴 돼지(모돈 母豚) 다섯마리를 출산이 임박해 옮기려고 차에 싣다가 그만 그놈들이 뛰쳐나가 이웃집 밭을 뭉개버렸다.
밭주인이 달려와 배상을 요구했다. 그 배상이란 모돈 다섯마리를 다 달라는 것이었다.
모돈 한 마리당 보통 열댓마리 정도 새끼를 배는데..그걸 다 달라고 말이다. 근 100 마리나 되는데...

얼굴이 노래져 달려온 그 집사에게 김목사는 말했다.
-성경을 믿는다면 다 주세요. 겉옷을 달라고 하는 자에게 속옷까지 주는게 성경적 아닙니까..
-그래도 이건 좀 너무하지 않습니까?
-너무하고 자시고가 어디 있나요. 성경말씀대로 한다는데... 하나님은 손해보게 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그래서 그 집사는 쓰린 마음을 부여잡고 모돈 다섯마리를 다 줘버렸다.
옆집으로 옮겨진 모돈들은 각각 18마리씩의 새끼를 낳아서 그 돼지는 모두 90마리가 돼있었다.
볼 때마다 마음이 쓰리고 힘들어서 그집쪽은 쳐다보기도 싫었지만 할 수없었다.





그러던 어느날, 이젠 그 이웃집 황소 세 마리가 담을 넘어 이쪽으로 와서 집사네 밭을 뭉개어버렸다.
그 집사는 신이 나서 달려왔다.
- 목사님, 목사님. 역시 하나님은 손해보게 하는 분이 아니십니더.  세상에 이러이런 일이 있었심니더.
  황소 한 마리에 몇 백만원씩 하는데 그거 세마리면..

하고 신이 나서 말한다.

그때 김목사가 말했다.

-  용서해주세요. 사랑이란 용서하는 겁니다.
   남의 잘못에 대해 되갚음하는 게 아니라 용서해주는 게 사랑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그렇게 하라고 가르치셨습니다. 그게 성경적입니다.

- 아니, 그래도..이건..

그래도 목사님 말씀에 순종했다.
그 집사는 이웃집 황소를 받지 않았고, 됐다고 괜찮다고, 밭 그거 뭉개졌어도 몇푼 하느냐고..
이렇게 손을 털고 한 푼의 보상도 받지 않았다.

한편, 황소 주인은 참 난감해졌다.
자기가 한 짓이 있는만큼 입이 열개라도 할 말이 없어졌다.
그래서 며칠간 끙끙 앓다가 돼지 95마리를 다 끌고왔다.
그리곤 다시 돌려줄테니 다 받으라고 했다.
집사는 놀라서 받을 수 없다고 했다. 난, 모돈 다섯마리만 받으면 된다고 했다...
하지만, 모돈 다섯마리와 그 새끼들, 이젠 잘 먹여서 살이 포동포동하게 찐 새끼들까지 모두 집사의 품으로 도로 돌려주신 분은 하나님이었다.

하나님의 방법이요, 기적이다. 그리고 표적이요 기사다.
하나님의 말씀에 무작정 순종할 때, 바다위를 걸은 베드로와 같은 기적이 일어났던 것이다.

그분의 말씀을 들으면서 '용서'를 생각한다.
사랑한다고 말은 하지만 용서는 잘 못하는 우리.
마음에 껄끄러운 사람 만나면 애써 미소지어주며 악수는 하는 척하지만, 깊은 마음속으론 여전히 용서하지 못하고 이를 갈고있는 소심한 우리는 아니던가...

예수를 믿어도 좀 화끈하게 믿고, 용서를 해도 좀 통 크게 해주고,
손해를 봐도 웃으면서 손털 줄 알고...
그러면 하나님이 우리에게도 멋드러진 기적들을 보여주실텐데...

사도행전 시대의 기적은 그때로서 끝이 난게 아니다.
바울과 바나바의 하나님은 오늘 이시간, 실시간으로서 나의 하나님이심을 믿는다.
그분은 그분의 방식대로 내가 살기를 원하신다.
내 방식이 아니라, 가르쳐주신 방식대로 살기만 하면.. 오늘 우리에게도 모돈 다섯마리의
 기적이 일어날 것을 믿는다.